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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성공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는 삶



성공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는 삶

 

"왜 사냐건 웃지요.".
김상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왜 사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싱긋이 웃음으로 답변해 주겠다는 뜻이다.
자연과 동화되어 사는 이의 초탈한 여유와 달관의 경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요즘 사람들이 사는 모습들을 지켜보노라면, "왜 사느냐"라는 물음에 그렇게 웃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생활이 팍팍한 사람은 경제난에 힘들어하고, 물질이 풍족한 사람은 늘 화난 듯한 얼굴이고, 수많은 이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유명인은 외로움을 호소한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여전히 뭔가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더 나은 상황, 더 많은 부, 마음의 안식처와 같은 이상적인 환경을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상황이 나아져도 바람은 같이 커지기 때문에 불행의 간격을 결코 메울 수 없다는 점이다.
나 아닌 다른 곳에서, 내면이 아닌 외부에서 그 해결점을 찾는 한 영원히 메울 수 없는 간격인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획일화된 사회 분위기, 예를 들면 학력, 재산, 사회적 지위로 은연중에 사람의 등급을 매기거나 그런 분위기에 동조하는 것이 불행을 증폭시킨다.
사람들은 다양하게 태어난다.
이 세상은 다양한 재능과 크고 작은 그릇이 어우러지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만일 성공 잣대가 오로지 뛰어난 재능과 큰 규모에만 맞추어진다면, 그렇지 못한 많은 사람은 삶 자체가 괴로움이 된다.


 

 

지금 많은 사람이 불행을 겪는 까닭은, 세상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자기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해야 하고, 분에 넘치는 일을 추구해야 하며, 지금 자신의 모습이 실패라고 생각하기 대문이다.
타고난 재능과 그릇은 인생을 이루는 일부일뿐이다.
나머지는 재능의 있고 없음이나 그릇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한정 없이 주어진 행복 영역이다.
그것을 자연이라 해도 좋고, 우주라 해도 좋다.
천차만별의 삶을 사는 사람들도 그 뿌리는 자연이요 우주요 무한으로 평등한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성공 모델을 쫓아갈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잘 가꿈으로써 인생의 보이지 않는 무한 영역의 맛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 보이지 않는 영역에 이르러야 비로소, 보이는 영역의 삶도 조화롭게 창조해 나갈 수 있다.


그 첫걸음이 바로,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것이다.
바로 여기가 무한으로 통하는 출입문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여야 자연이 드러난다.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불평스러우면 불평스러운 대로 피하지 말고 온전히 받아들이며 나아갈 때, 삶의 조화는 시작되고 창조도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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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 Seri F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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